|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한 편의 영화 |
| [속보, 연예] 2004년 03월 02일 (화) 10:13 |
[오마이뉴스 강인규 기자]영화가 불러 온 반유대주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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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ICON |
여기서 재는 죽음의 상징으로 교인들은 이 의식을 통해 삶의 무상함을 되새기는 동시에 2000년 전 예수가 세상에 와서 받았던 고난에 참여한다.
적어도 미국인들에게 금년 '재의 수요일'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을 것이다. 기독교 신념에 근거해 세운 나라인 미국은 국민의 60퍼센트 이상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현재 집권하고 있는 대통령은 자칭 종교적으로 '거듭 난 자'다. 이처럼 종교적인 사회인 미국이 최근 종교 논쟁으로 다시 한번 뜨겁게 달아올랐다.
미국의 신문과 방송은 연일 특집 방송과 기사를 내보냈으며 각 종교단체에서는 유인물을 뿌리거나 이메일을 통해 열심히 자신들의 주장을 폈다. 이 논쟁의 중심에 선 것은 다른 아닌 영화 한 편이다. 그것도 기독교인들이 열심히 비판해 오던 '상업문화의 온상'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인물이 만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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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유대인 단체에서 배포한 영화관련 유인물 | |
| ⓒ2004 Jews for J |
멜 깁슨은 자신의 영화가 결코 유대인에 대한 적대감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완성되지도 않은 필름을 가지고 종교지도자와 언론인들을 대상으로 몇 차례 시사회를 열기도 했다. 이를 참관한 종교인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어떤 이는 "영화 내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멜 깁슨이야말로 현대의 미켈란젤로다"라는 극찬을 하기도 했고, 다른 이는 "내가 본 영화중 가장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영화였다"하고 혹평을 하기도 했다.
영화를 둘러싼 논쟁, 매진으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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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션>의 감독겸 제작자인 멜 깁슨 | |
| ⓒ2004 ICON |
그 결과 오전 상영이 드문 미국 극장에서조차 아침부터 찾아와 매표소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각 방송사에서는 첫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극장 앞에 중계차를 배치했으며, 사람들은 팝콘과 콜라 대신 경건한 침묵으로 하나 둘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독실한 전통주의 가톨릭 신자인 멜 깁슨은 오래 전부터 이 영화를 계획해 왔으나 이를 실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흥행을 보장받을 수 없는 종교영화에 대해서 어떤 제작자도 선뜻 투자하겠다고 나서지 않았으며 영어 대신 이미 사어가 된 고대 아람어와 라틴어만으로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멜 깁슨의 제안에 모두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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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ICON |
자막이 들어간 외국영화 자체를 싫어하는 미국 관객들을 대상으로, 그것도 언어를 이해할 아무런 이해의 단서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결국 멜 깁슨의 이름은 크레딧 화면을 여러 번 장식해야 했다. 각본 멜 깁슨, 감독 멜 깁슨, 그리고 제작 멜 깁슨. 그는 사재를 털어 제작비 2500만불을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개봉 첫 날 올린 수익은 감독 자신도 놀랄 만한 것이었다. 이 영화는 수요일 하루만 20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이변을 낳았기 때문이다.
<패션¨>이 개봉이후 5일간 벌어들인 총 수익은 1억 2천 4백만 달러로, 하루 평균 입장수입이 제작비를 상회하는 놀라운 액수다. 이 성적은 <스파이더맨>이나 <반지의 제왕> 등 다른 대형 상업영화가 세운 기록에 필적한 만한 것은 아니지만 <왕중 왕>이나 <십계> 등 다른 종교영화의 총개봉일 수익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그러나 개봉 전까지 깁슨과 그의 영화는 적지 않은 '고난'을 겪어야 했다. 깁슨은 일부 장면을 편집했으며 자막을 넣어달라는 관객의 요구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어떤 영화인가?
| ⓒ2004 ICON |
이 영화는 성경의 신약부분에 쓰인 그리스도의 최후를 고통스러우리만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살점이 뜯어져 나가는 채찍질, 석회암 바닥에 흥건히 괸 피, 예수의 위태로운 어깨에 걸려 언덕을 오르는 육중한 십자가, 그의 손과 발에 차례차례 박히는 거대한 못과 망치소리. 유대인들이 '반유대주의 정서'의 불을 당길 것을 우려했던 장면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멜 깁슨이 표현에 얼마나 주의를 기울였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주관적 해석을 지양하고 성경 내용을 충실히 시각화하겠다는 감독의 의도는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영화 전체를 통해서 드러난다.
영화는 시종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를 배제하고, 사건을 3인칭 관찰자의 시점에서 묘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영어 대신 아람어와 라틴어를 고집한 것 역시 '객관성'에 대한 감독의 집착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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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패션…>은 형식적으로 보수적이고 시각적으로는 잔혹한 영화가 될 수밖에 없던 셈이다. '반유대주의'의 논란에 맞서 성경을 객관적으로 영상에 담으려는 노력은 예수의 육체적 고통에 초점을 두는 결과로 나타났고 예수의 고난을 사실적으로 영화화한 결과는 다시 역으로 ‘반유대주의’의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역설을 초래했다.
<패션…>이 표현에 조심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시종 다큐멘터리의 객관성을 답습한 '모큐멘터리(mocumentary)' 차원에 머문 것은 아니다. 영화는 잦지는 않지만 사건의 순간마다 등장인물의 연관된 회상장면을 삽입했으며 드물지만 예수가 뱀의 머리를 밟는 것과 같은 상징적 표현도 포함했다.
| ⓒ2004 ICON |
이에 비해 유대교 대제사장 가야바는 소심하고 무책임한 사람으로 묘사되었다는 비판이 유대교측에서 나올 법하다.
잔인한 장면에 담긴 구원과 화해의 메시지
오랜 세월동안 '예수 살인범'이라는 비난을 받아 온 사람들이기에 이 영화를 둘러싼 유대인들의 우려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패션…>이 대체로 균형잡힌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반유대주의의 음모로 보는 시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유대인이라면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자비의 물 잔을 건넨 사람들도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비록 잔인한 장면들이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 있지만 <패션…>은 그 고난을 통해서 인류의 구원과 화해를 이루고자 했던 사람의 이야기다. 병사들이 예수를 잡으러 왔을 때 제자인 베드로가 칼을 꺼내어 한 병사의 귀를 자르자 예수는 귀를 집어 다시 병사에게 붙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 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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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000년 후 인류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이를 믿는다는 사람들은 그의 이름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자기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돈과 명예의 축복을 구하는 기도 소리에 묻혀 버렸다.
2000년 전 예수를 누가 죽였느냐는 물음은 더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 시간에도 예수의 가르침을 조롱하고 그의 손에 못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인규 기자 (inkyukang@wisc.edu)










